마치카네 탄호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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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주마.
이름 희한하게 짓기로 유명한 마치카네의 관명을 가지는 패밀리들 중에서 의외로 멀쩡한 이름을 받아서 도리어 유명했던 이 말[3] 은 활동 당시의 미묘한 타이밍 때문에 은근히 기억에 남는 말이 되었다. 총 32전중 중상 4승을 포함해 8승, 32전중 24전에서 5착 이내로 상금 획득. 상금액으로는 어지간한 G1마들보다 더 많은 상금을 벌어들이며 안정적인 상금 헌팅을 했던 말이다. 명종마였던 노던 테이스트의 자마들 중에서도 상금 1위를 차지하고 있다.[4]
하지만 이 말의 진짜 이야기거리는 뛰었던 경기보다 안 뛰었던 경기에서 나온다. 94년 재팬컵. 비와 하야히데와 위닝 티켓이 가을 천황상 이후 굴건염으로 은퇴, 나리타 타이신도 은퇴만 안했을 뿐 부상으로 사실상 커리어가 끝난 상태였고, 라이스 샤워는 골절, 삼관마 나리타 브라이언은 아리마 기념 직행, 당해 가을 천황상 우승마였던 네하이 시저도 재팬컵 패스하고 아리마 직행. 암말이었던 히시 아마존은 엘리자베스 여왕배 - 아리마 코스를 선택했다. 유력한 G1마들이 전부 빠져버리다보니 역대급으로 일본말들의 수가 적어져서 총 출주 15두 중에서 일본말은 겨우 5마리. 그 중에 G1 타이틀마는 한마리도 없었다. 그나마 전적에서 볼만한 말은 3착 전문으로 유명한 그 말 나이스 네이처, 바로 직전의 세 경주를 킨코상 G3 1착, 타카마츠노미야배 G2 3착, 교토대상전 G2 1착으로 한창 물이 올라있었던 마블러스 크라운, 그리고 이 마치카네 탄호이저가 아옹다옹하던 상황. 실적으로 본다면 한창 물이 오른 마블러스 크라운이 제일 기대되겠지만 도쿄에서는 한번도 뛰어본 적이 없다는점에 마장 적응이 전혀 안된상황이라 불안했고, 그래서 애국 베팅을 때리려는 사람들에게 G2 우승을 계속 가져오던 마치카네 탄호이저가 의외의 국밥취급을 받으며 기대주로 꼽히게 된 것이다.[5]
그리고 출주 당일, 조교사가 지금까지 본중에 최고의 컨디션이라고 호언장담하던 마치카네 탄호이저는 출주 직전 비출혈[6] , 즉 코피로 결장을 하게 된다. 당해 재팬컵은 결국 마블러스 크라운이 우승하면서 애국 베팅맨들의 자존심을 지키기는 했지만, 이 사건으로 마치카네 탄호이저는 엉뚱한 방향으로 기억에 남게 된다. 그리고 같은 해. 재팬컵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 해의 마무리를 결정하는 아리마 기념에 출주 등록을 하였지만 두드러기로 경기 직전 출주를 취소한다. 사료에 섞여있던 거미를 먹고 그렇게 되었다는 얘기가 흔히 퍼져있는데,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7] 그리고 그 다음 해인 95년 전년도에 우승했던 아메리카 저키 클럽컵에서 복귀 시동을 걸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종기로 인해 휴식 연장. 관계자들을 실소하게 만들었다.[8]
결국 느즈막히 7월에 이르러서야 타카마츠노미야배에 출주, 우승하여 G2 승수를 추가함과 동시에 결코 실력이 없지는 않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 이후로 기력이 다했는지 입상권에도 들어오지 못하다가 1995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이후 종마로 데뷔를 하기는 했으나, 크게 어필할만한 G1을 못따기는 했지만 노던 테이스트의 자식들 중에서도 꽤 좋은 혈통의 말이었던 것치고는 종마로써의 인기는 완전히 바닥이라[9][10] 매년 교배횟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준이었고, 결국 자식중에서 중상마는 얻지 못했다. 2004년을 끝으로 개점 휴업상태로 지내다 2010년 종마도 은퇴하고 이후 공로마로 여생을 보냈으나, 2013년에 산통(복통, 정확히 어떤 병을 지칭하기 보다는 복통을 동반하는 내장계 질환을 통칭하는 명칭이다.)으로 생을 끝냈다.
생전엔 매우 온순하고 애교가 많은 성격이었으며, 관람객이 자신을 쓰다듬어주지 않으면 오히려 실망하는 기색을 보일 정도로 사람을 잘 따랐다고 한다. 또한 은퇴 후엔 같은 관명을 쓰는 후배말인 마치카네 후쿠키타루와 함께 지냈는데, 평소엔 얌전하던 후쿠키타루가 탄호이저만 만나면 먼저 장난치고 어리광을 부릴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타고난 애교 덕분에 골수 팬들도 많아, 한번은 한 여성팬이 탄호이저에게 선물로 당근 100kg을 기부하기도 했다고 한다.
[각주]
1. 개요[편집]
일본의 경주마.
2. 혈통[편집]
3. 생애[편집]
이름 희한하게 짓기로 유명한 마치카네의 관명을 가지는 패밀리들 중에서 의외로 멀쩡한 이름을 받아서 도리어 유명했던 이 말[3] 은 활동 당시의 미묘한 타이밍 때문에 은근히 기억에 남는 말이 되었다. 총 32전중 중상 4승을 포함해 8승, 32전중 24전에서 5착 이내로 상금 획득. 상금액으로는 어지간한 G1마들보다 더 많은 상금을 벌어들이며 안정적인 상금 헌팅을 했던 말이다. 명종마였던 노던 테이스트의 자마들 중에서도 상금 1위를 차지하고 있다.[4]
하지만 이 말의 진짜 이야기거리는 뛰었던 경기보다 안 뛰었던 경기에서 나온다. 94년 재팬컵. 비와 하야히데와 위닝 티켓이 가을 천황상 이후 굴건염으로 은퇴, 나리타 타이신도 은퇴만 안했을 뿐 부상으로 사실상 커리어가 끝난 상태였고, 라이스 샤워는 골절, 삼관마 나리타 브라이언은 아리마 기념 직행, 당해 가을 천황상 우승마였던 네하이 시저도 재팬컵 패스하고 아리마 직행. 암말이었던 히시 아마존은 엘리자베스 여왕배 - 아리마 코스를 선택했다. 유력한 G1마들이 전부 빠져버리다보니 역대급으로 일본말들의 수가 적어져서 총 출주 15두 중에서 일본말은 겨우 5마리. 그 중에 G1 타이틀마는 한마리도 없었다. 그나마 전적에서 볼만한 말은 3착 전문으로 유명한 그 말 나이스 네이처, 바로 직전의 세 경주를 킨코상 G3 1착, 타카마츠노미야배 G2 3착, 교토대상전 G2 1착으로 한창 물이 올라있었던 마블러스 크라운, 그리고 이 마치카네 탄호이저가 아옹다옹하던 상황. 실적으로 본다면 한창 물이 오른 마블러스 크라운이 제일 기대되겠지만 도쿄에서는 한번도 뛰어본 적이 없다는점에 마장 적응이 전혀 안된상황이라 불안했고, 그래서 애국 베팅을 때리려는 사람들에게 G2 우승을 계속 가져오던 마치카네 탄호이저가 의외의 국밥취급을 받으며 기대주로 꼽히게 된 것이다.[5]
그리고 출주 당일, 조교사가 지금까지 본중에 최고의 컨디션이라고 호언장담하던 마치카네 탄호이저는 출주 직전 비출혈[6] , 즉 코피로 결장을 하게 된다. 당해 재팬컵은 결국 마블러스 크라운이 우승하면서 애국 베팅맨들의 자존심을 지키기는 했지만, 이 사건으로 마치카네 탄호이저는 엉뚱한 방향으로 기억에 남게 된다. 그리고 같은 해. 재팬컵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 해의 마무리를 결정하는 아리마 기념에 출주 등록을 하였지만 두드러기로 경기 직전 출주를 취소한다. 사료에 섞여있던 거미를 먹고 그렇게 되었다는 얘기가 흔히 퍼져있는데,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7] 그리고 그 다음 해인 95년 전년도에 우승했던 아메리카 저키 클럽컵에서 복귀 시동을 걸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종기로 인해 휴식 연장. 관계자들을 실소하게 만들었다.[8]
결국 느즈막히 7월에 이르러서야 타카마츠노미야배에 출주, 우승하여 G2 승수를 추가함과 동시에 결코 실력이 없지는 않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 이후로 기력이 다했는지 입상권에도 들어오지 못하다가 1995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이후 종마로 데뷔를 하기는 했으나, 크게 어필할만한 G1을 못따기는 했지만 노던 테이스트의 자식들 중에서도 꽤 좋은 혈통의 말이었던 것치고는 종마로써의 인기는 완전히 바닥이라[9][10] 매년 교배횟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준이었고, 결국 자식중에서 중상마는 얻지 못했다. 2004년을 끝으로 개점 휴업상태로 지내다 2010년 종마도 은퇴하고 이후 공로마로 여생을 보냈으나, 2013년에 산통(복통, 정확히 어떤 병을 지칭하기 보다는 복통을 동반하는 내장계 질환을 통칭하는 명칭이다.)으로 생을 끝냈다.
생전엔 매우 온순하고 애교가 많은 성격이었으며, 관람객이 자신을 쓰다듬어주지 않으면 오히려 실망하는 기색을 보일 정도로 사람을 잘 따랐다고 한다. 또한 은퇴 후엔 같은 관명을 쓰는 후배말인 마치카네 후쿠키타루와 함께 지냈는데, 평소엔 얌전하던 후쿠키타루가 탄호이저만 만나면 먼저 장난치고 어리광을 부릴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타고난 애교 덕분에 골수 팬들도 많아, 한번은 한 여성팬이 탄호이저에게 선물로 당근 100kg을 기부하기도 했다고 한다.
4. 경주 성적[편집]
[1] 탄호이저의 정식 번역은 タンホイザー이지만, 일문 이름을 공백 포함 9자 이내로 제한하는 규정 때문에 마지막 장음을 뺐다.[2] 영문 이름을 공백 포함 18자 이내로 제한하는 규정 때문에 ch를 t로 줄이고 띄어쓰기도 없앴다.[A] A B C 당시에는 2000m G2 경주였다. 마치탄이 우승한 다음 해인 1996년에 단거리 1200m G1이 되었다.[3] 그런데 마치카네 관명도 그렇고 메지로 관명도 그렇고, 대부분 의미는 좋은데 관명과 합쳐지니 이상해진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로 사실 일본 경마계에서 메지로나 마치카네 등은 희한한 이름의 말들을 이야기 할 때 그닥 거론되지 않는 편이다. 사실 합치니 이상해 지는 관명마들과는 달리 이후 진짜로 작정하고 희한+해괴한 이름만 마명으로 짓는 마주들이 몇명 나온 덕에 더욱 묻힌 편이기도 하고. 대신 희한하진 않지만 촌스럽다 정도의 이유로는 아직도 까이는 중이다.[4] 물론 이 순위는 경주마 본래의 기량보다는 노던 테이스트가 리딩사이어로 활동했던 1980년대 일본 경제의 급성장 + 경마 붐이라는 겹호재로 상금의 인플레이션이 일어난 덕이 더 크긴 하지만, 객관적으로도 충분히 많은 상금이다.[5] 애국 베팅을 때리려던 사람들에게 그랬다는 말이고, 실제 일본마들의 인기 순위는 전부 다 저 뒤에서 놀고 있었다. 특히 출주 취소된 마치카네 탄호이저는 공식 기록이 없어서 정확한 순위를 알 수 없는 상황. 나머지 중에 가장 인기 좋고 실적 좋았던 마블러스 크라운이 인기 6위로 우승후 단승 10.6배를 챙길 수 있었고, 나이스 네이처는 94년에는 이미 기량이 상당히 떨어져 있던 상태라 중상 승리 기록이 한번도 없던 로이스 앤드 로이스에게도 밀리는 11번 인기였다. 남은 두 마리는 중상 승리는 없지만 직전의 가을 천황상에서 3착을 했던 5세마 로이스 앤드 로이스가 8번 인기. 더 말년이 돼서 노익장을 과시하며 G2 3승 G3 1승을 챙기지만 저때까지만 해도 7세마가 될때까지 G3 1승이 전부였던 G3따리 후지야마 켄잔이 14번 인기.[6] 다른 말로 폐출혈. 사람으로 치면 각혈로 몸 상태가 심각했다는 얘기다. 출주 도중 폐출혈이 일어났다면 요단강을 건널 뻔했다. 다른 의미로 마치카네 탄호이저는 죽을 고비를 넘긴 말이다.[7] 조교사의 인터뷰에서 원인을 묻자 '사료에 섞여있던 거미라도 먹은 게 아닐까'라고 반쯤 농담으로 이야기한 것이 사실인 양 퍼져나간 것이다.[8] 일본에서도 유머러스한 기록으로 퍼져있기는 하지만 사실 서러브레드의 코피는 꽤 심각한 증상이고, 두드러기와 종기도 대표적인 면역력 저하의 증상이다. 결국 반년이 넘는 휴양에 들어가게 됐던 걸 보면 건강에 상당히 이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9] 하필이면 이 시기가 바로 노던 테이스트에서 선데이 사일런스로의 리딩사이어 세대교체가 진행되던 시기였다.[10] 또한 위의 일화를 보면 짐작이 가지만, 혈통이 아무리 좋아도 면역력 저하라는 유전병에 대한 의혹도 있던 말이라 종마로 쓰이기엔 꺼렸던 감도 있다.아버지인 노던 테이스트부터가 상당한 인브리딩으로 태어난 말이었다.[레코드] A B [11] 1995년을 마지막으로 폐지, 1996년부터 마일 GI인 NHK 마일 컵으로 대체[12] 독일의 경주마. 1994, 1995년 독일 연도대표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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